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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종화 아파트와 거주의 새로운 공간을 향해

2024.08.23

혼종화 아파트와 거주의 새로운 공간을 향해

 

<최성희 작가의 아파트 작품>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는 1930년대 건축된 충정로 유림아파트다. 그후 1958년 서울 종암동에 17평형 5층짜리 3개동 152가구의 아파트가 건설됐지만 일반인들의 아파트에 대한 거부감으로 분양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일반인의 아파트에 대한 인식을 바꾼 것은 주택영단이 확대 개편되면서 대한주택공사가 발족한 후 1962년에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단지 개념 아파트인 마포아파트 때부터다.

그 이후 아파트에 대한 선호는 증가해왔는데, 아파트는 전통 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효율성과 부동산 가치를 보장해 주었기에,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와 접속되어 급속도로 파급되었다.

그런데, 그런 아파트는 전통 주거와 비빔밥화, 혼종화된 차원도 있었다. 즉 아파트에는 우리의 마당 중심의 전통주거의 정서가 면면히 자리하고 있었다. 마당에서 대청으로, 방으로 독립적으로 들어가는 조선 주거의 형식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외국의 아파트는 우리식 아파트와는 완전히 다르다. 복도로 연결되어 있거나 거실, 주방, 식당 같은 공용공간과 방이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다. 우리 아파트에서 거실은 서구적 개념의 거실이 아니라 실은 마당이다. 우리는 현관을 통해 마당으로 일단 진입하고 거기에서 다시 주방으로, 방으로, 화장실로 들어간다. 심지어 무더운 여름에 온 식구가 함께 거실로 나와 잔다.

그러므로 아파트는 결코 서구의 산물만은 아니라 전통 가옥과 혼종화된 아파트인 것이다. 역사적인 차원에서 보면 1960년대의 생존적 가족주의를 너머 1970년대의 이기적 가족주의가 강남을 통해 폭발할 때,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증폭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심리적인 차원에서 보면 전통적 기복문화와 연결되어 아파트가 행복의 도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아파트에 매달리는 삶은 진짜 우리의 삶이고 선택한 삶일까?를 질문해 볼 수 있다. 즉 아파트는 내면의 욕망과 혼종화되는 존재이다. 주체는 부재하는 것을 욕망하고,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타자의 욕망이 욕망을 만든다는 라캉의 욕망이론은 현대 소비사회에서 아파트 상품논리가 확장되는 현상을 기호화 논리로 설명하면서 이것에 따라 소비욕구가 팽창한다는 보드리야르의 문제의식과도 맞닿는다.

고유한 아침의 나라를 탈피하는 아파트식 거주 방식은 하이데거의 거주의미를 통해 거주에서 나타는 공간적 특성을 살핌으로서 일상의 삶에서 인간의 거주를 더욱 발현시키는 건축적 공간이 무엇인지를 질문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파트에는 한국의 전통적 음식인 김치와 고추장에서 보이는 발효, 그 느림의 미학이 없다. 하이데거의 문제의식은 타자의 가치관에 미혹되기보다 주체적 가치관을 구축하고자 노력하는 과정, 즉 공자(孔子)의 논어()에서`불혹'과도 연관된다. 불혹은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이 아니라 스스로 옳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모색하고 추구하는 진정한 `'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지방이나 동남아의 아파트들을 보면 눈치를 특징으로 하는 한류의 특성이 잘 나타난다. 작금에 있어서 한류 아파트의 형태로 TV 드라마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등에 많이 진출하고 있다. 베트남 등에 부는 아파트 한류의 바람은 국내의 내로라하는 건설사들을 통해 현지에 수출되고 있고, 찜질방과 같은 K-사우나도 미국 등에 급격하게 파급되고 있다.

그런 아파트에도 질문될 수 있는 것은 아파트 욕망은 타인의 눈치만 보고 사는 인생, 타인의 기대에만 부응하는 부질없는 삶과도 혼종화될 수 있기에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삶에 익숙해지지 않는 성찰이 필요할 수도 있다. 결국 각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삶대신 오롯이 혼자서는 인생을 위한 마음 훈련의 성찰이 아파트와 연결되는 것이다.

어쨌든 아파트는 수십년 동안 우리가 검증하며 때로는 거부하고, 때로는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때로는 비판하면서 가꾸어 온 우리의 내면 속까지 관여되는 혼종화 문화이다. 그러면서도 아파트는 건축미학적 성과 보다는 이해득실의 대차대조표에 의해서 건설되기에 미학적 시도가 많이 위축되는 경제성의 환원 문제가 있다. 이 엄정한 경제성을 무시하고서는 새로운 살림의 공간을 위한 아무런 시도도 할 수 없다. 일단 우리의 현실을 긍정하고 거기에서 새로운 혼종화의 아파트를 기획하고, 새로운 거주 공간을 위한 실험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실험 속에서 계속된 질문은 이어진다. 아파트 자체를 해체하면서 내면과의 투쟁을 겸비한 새로운 거주공간을 도시공간에서 질문해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최용성 박사는 부산대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부산대, 부산교대 윤리교육과에서 가르치고 있다. 자치분권, 직접민주주의를 핵심가치로 하는 부산자치당의 준비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01046172732)